1장. 프랑스 언어정책의 역사 : 1.3. 프랑스어의 역사 1.4. 혁명기의 언어정책

2024. 8. 17. 12:03프랑스 언어와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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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의 역사

 

I. 개요 

 

기원과 발전

프랑스어의 역사는 기원전 58-31년 사이 로마가 갈리아(지금의 프랑스 지역)를 정복하면서 시작된다. 로마 제국의 정복 이후 갈리아는 철저하게 로마화되었고, 로마의 언어인 라틴어가 전파되었다. 이 시기 갈리아어는 로마 제국이 해체되는 5세기경 거의 소멸하게 된다. 로마의 영향으로 갈리아에서는 고전 라틴어와는 다른 형태의 구어 라틴어가 사용되었고, 이것이 프랑스어의 기원이 된다. 이 구어 라틴어는 통속 라틴어(라틴어 vulgaris)로 불리며, 경제, 사회, 문화적 요소들에 의해 전파되었다.

 

갈로로망어의 등장

라틴어가 통속 라틴어로 변하면서 갈로로망어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4세기경에는 이미 리옹을 기준으로 북방과 남방 라틴어로 구분되기 시작했으며, 8세기경에는 각 지방의 특성과 게르만족의 이동으로 인해 라틴어는 로망어 또는 갈로로망어로 완전히 전환되었다. 프랑크족의 정복은 이 언어적 변화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프랑크 왕국에서 소수의 프랑크족은 라틴어와 갈로로망어를 사용하였고, 결국 프랑크어는 점차 밀려나게 된다. 그러나 프랑크어는 북부의 오일어와 남부의 오크어의 분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프랑스어의 탄생

프랑스어의 탄생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문서가 842년의 스트라스부르 서약이다. 이 문서는 서프랑크 왕국의 로망어(프랑스어 초기 형태)로 작성된 첫 기록 중 하나로, 프랑스어가 라틴어에서 독립된 언어로서 자리 잡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9세기경 프랑스어는 탄생했다고 보지만, 실제로 프랑스어라는 단어는 12세기에야 등장한다. 위그 카페는 프랑크어가 아닌 로망어를 사용한 최초의 프랑크족 왕이었다. 프랑스어의 역사는 크게 고대 프랑스어(913세기), 중세 프랑스어(1415세기), 고전 프랑스어(16~18세기)로 나뉜다.

 

고대 프랑스어 시대 중세 프랑스어 시대 고전 프랑스어 시대
고대 프랑스어는 초기에는 파리와 그 인근 지역에서 사용되었으며, 왕과 상류층의 언어였다. 당시 공용어는 여전히 라틴어였지만, 고대 프랑스어는 점차 행정과 문학 분야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13세기에는 고대 프랑스어로 된 문학작품이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필리프 2세의 통치 시기에는 고대 프랑스어가 프랑스 북부의 다른 오일어 변이형에 대해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14세기와 15세기 중세 프랑스어 시대에는 프랑스어가 상서청의 공문서에서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필리프 6세와 장 2세의 통치 시기, 프랑스어는 라틴어와 함께 공식 문어로 자리 잡았다. 오크어 지역인 프랑스 남부에서도 프랑스어 사용이 점차 확대되었다. 부르주아지의 성장과 도시의 발달 덕분에 프랑스어는 도시의 언어로 자리 잡았고, 프랑스어를 제외한 모든 오일어와 오크어는 사투리로 간주되기 시작했다. 고전 프랑스어 시대인 16~18세기 동안 프랑스어는 유일무이한 공용어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 시기 프랑스어는 문학, 법률, 과학, 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히 사용되었으며, 프랑스 혁명을 거치며 현대 프랑스어의 기초가 확립되었다. 이로써 프랑스어는 프랑스의 정치적, 문화적 통일을 상징하는 중요한 언어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프랑스어의 역사는 보통 고대 프랑스어(9~13세기), 중세 프랑스어(14~15세기), 고전 프랑스어(16~18세기)로 나눈다.

 

 

로마의 갈리아 정복과 언어 변화

1.갈리아 정복 (기원전 58-51)
로마가 갈리아(현재의 프랑스)를 정복.
갈리아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갈리아 원정기」와 관련.
기원전 52베르킨게토릭스의 총궐기를 제외하고는 철저히 로마화됨.
 

2. 갈리아어의 소멸과 라틴어의 전파

고유 문자가 없었던 갈리아어는 5세기경 거의 소멸.
500년 동안 로마화 과정에서 라틴어 전파.
라틴어는 고전 라틴어와는 다른 구어적, 통속적 형태로 전파됨.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등은 통속 라틴어(Vulgar Latin)에서 유래.

 

3. 로망어와 갈로로망어

통속 라틴어는 각 지방의 특성과 게르만족의 이동 때문에 변형됨.
로망어 또는 갈로로망어라 불림.
4세기부터 리옹을 기준으로 북방과 남방 라틴어로 구분되기 시작.
 

4. 로망어의 완성 (8세기)

로망어로의 이행은 8세기에 완성.
지역에 따라 이행 속도에 편차가 있었음.

 

 

5. 프랑크족의 정복과 언어 상황의 복잡화

    • 프랑크족의 정복으로 언어 상황이 복잡해짐.
    • 클로비스의 프랑크 왕국에서 프랑크족은 인구의 5%에 불과.
    • 프랑크어는 주민 대다수의 갈로로망어와 상대가 되지 않음.
    • 클로비스의 기독교 개종으로 라틴어의 확고한 지위 확보.
    • 프랑크어는 라틴어와 갈로로망어에 밀려나게 됨.
 
 

6. 언어의 이원화와 프랑크어의 영향

   • 프랑크어는 북부의 오일어와 남부의 오크어 이원화에 기여.
   • 오일어는 오크어에 비해 프랑크어의 영향을 많이 받음.
   • 프랑스어가 로망어의 성격을 가장 많이 잃어버린 이유는 프랑크족의 지배 때문.
 

결론

   • 로마의 갈리아 정복은 지역의 언어와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라틴어가 갈로로망어로 변형되고
     프랑크족의 영향으로 프랑스어가 독특한 형태로 발전하게 됨.
 

카롤링거 왕조와 언어 변화

 

1. 카롤링거 왕조의 문예부흥

•  Alcuin이 추진한 카롤링거 왕조의 문예부흥.
고전 라틴어로 돌아가려는 시도.
사회, 문화, 언어적 간극심화시킴:
고위 성직자: 고전 라틴어 사용.
프랑크 왕족 : 프랑크어 사용.

  일반 주민 : 시골 로망어(lingua romana rustica) 사용.

 

2. 언어 상황의 복잡성

(1) 이중언어 또는 다언어 상황 :
            • 북방남방 라틴어로 구분됨.
            • 프랑크족의 정복으로 복잡해짐.
(2)  프랑크 왕국의 언어 :
             • 프랑크족은 인구의 5%에 불과.
             • 프랑크어는 갈로로망어의 상대가 되지 못함.
             • 클로비스의 기독교 개종으로 라틴어의 지위 강화.
(3) 프랑크어 영향 :
              • 북부의 오일어 남부의 오크어 이원화에 기여.
              • 프랑스어는 프랑크족의 지배로 로망어 성격을 많이 잃음.
 

3. 스트라스부르 서약 (842)

 

(1) 스트라스부르 서약(Sements de Strasbourg)에서 시골 로망어 최초 사용:
 
                          루트비히(동프랑크 왕국)샤를(서프랑크 왕국)의 동맹 서약.
 
(2) 언어 사용 :
 

    루트비히의 튜튼어 연설 (라틴어로 기록된 지문).

    샤를의 로망어 연설 (라틴어로 기록된 지문).

    루트비히의 서약 (로망어로 기록).

    샤를의 서약 (튜튼어로 기록).

    샤를의 군사들의 서약 (로망어로 기록).

    루트비히의 군사들의 서약 (튜튼어로 기록).

    서약 후 루트비히와 샤를의 이별 (라틴어로 기록).
 
 
Verdun 조약

 

 

870년 Meerssen 조약
 
 

4. 프랑스어의 탄생 논의

 

스트라스부르 서약이 프랑스어 탄생의 결정적 증거는 아님.
 
현존 문서는 원본이 아닌 사본.
 
프랑스어는 라틴어에서 서서히 파생된 독자적 언어.
 
스트라스부르 서약은 국가와 신민국가어의 출생증명서로 간주될 수 있음.

 

 

II. 프랑스어의 탄생과 발전

1. 프랑스어의 탄생

9세기경 프랑스어 탄생.
12세기경"franceis", "françois", "freepoys"라는 단어 출현.

 

 

2. 위그 카페(Hugh Capet)

987년 즉위.
로망어를 모어로 사용한 최초의 프랑크족 왕.
프랑스 왕국의 첫 번째 왕으로 간주됨.
 

3. 뚱보왕 루이 6(Louis le Gros)

위그 카페의 직계 후손.
1119, 스스로를 **"프랑스 왕"(Rex Franciae)**이라고 자칭.
"France"라는 단어가 생겨나고, françoys 또는 françois 파생됨.
 
Hugh Capet Louis le Gros (1081-1137)

요약

프랑스어는 9세기경 탄생했으며, 12세기경 "franceis", "françois", "freepoys"라는 단어가 나타났다. 위그 카페는 로망어를 모어로 사용한 최초의 프랑크족 왕으로, 987년에 즉위했다. 그의 후손 루이 6세는 1119년에 스스로를 "프랑스 왕"이라 칭하며 "France"라는 단어와 그 파생어들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위그 카페는 일반적으로 프랑스 왕국의 첫 번째 왕으로 간주된다.

 

2.1. 고대프랑스어 

 

 

1.언어적 분화와 변이

프랑스의 언어적 분화와 변이는 오랜 역사적 과정을 거쳐 형성된 것이다. 4세기부터 시작된 북부와 남부의 언어 분리는 게르만족의 이동과 봉건제의 영향으로 더욱 심화되었다.

 

10세기 초에 이르러 프랑스 영토는 크게 오일어, 오크어, 프랑코프로방스어 지역으로 형성되었으며, 각 지역 내에서도 다양한 언어 변이가 진행되었다.

오일어 지역에서는 고대 프랑스어, 피카르디어, 노르망디어, 샹파뉴어, 갈로어, 푸아티에어 등의 변이형이 발생했다. 오크어 지역에서는 가스코뉴어, 랑그도크어, 프로방스어, 오베르뉴어, 리무쟁어, 카탈루냐어 등의 변이형이 나타났다. 프랑코프로방스어 지역에서는 리옹어, 사부아어, 도피네어 등의 변이형이 생겨났다.

게르만어 계열로는 프랑크어, 플라망어, 알자스어 등이 존재한다. 또한 브르타뉴어와 바스크어와 같은 고유한 언어들도 프랑스의 언어적 다양성에 기여하고 있다.

 

 

 

이러한 언어적 분화와 변이는 프랑스의 풍부한 문화적 유산을 반영하며, 지역별 특색과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2. 고대 프랑스어의 초기 상태

고대 프랑스어: 파리와 인근 지역에서 왕과 상류층이 사용.
 
당시 공용어는 고전 라틴어: 성직자와 식자층 전유물.
라틴어: 교회, 행정, 사법, 교육, 학문, 문화의 언어, 가톨릭 세계의 국제어.
평민: 지역 변이형이나 토착어 사용.
 

3. 고대 프랑스어의 보급과 문학 발전

왕권과 행정 강화로 고대 프랑스어 보급.
13세기: 고대 프랑스어 문학작품 등장. - 초기 명성: 피카르디어, 샹파뉴어, 노르망디어.
                                                                - 오일어 변이형 간 상호 이해 가능.
 

4. 필리프 2세 시대와 고대 프랑스어의 우위

 
 
필리프 2(1179-1223 재위) 시대: 고대 프랑스어가 다른 오일어에 우위.
 
 
13세기:
 
      • 파리 : 왕국 행정 중심지.
      • 상서청 : 고대 프랑스어로 공문서 작성 시작.
      • 최초 고대 프랑스어 왕령문서 : 125412 작성.
 

 

*  공문서 작성

 

     • 라틴어: 대부분의 공문서 작성.
 
     • 남부 프랑스: 12세기 중반부터 오크어 공문서 등장.
 
     • 피카르디어: 1204년 최초 공문서 작성.
 
     • 상서청: 1241년 최초 오일어 왕령문서 작성.
 
     • 1254: 최초 고대 프랑스어 왕령문서 작성.
 
 
 

요약

고대 프랑스어 시대는 북부와 남부의 언어적 분리와 변이를 포함하며, 게르만족의 이동과 봉건제의 영향으로 더욱 복잡해졌다. 파리와 인근 지역에서 상류층이 사용하던 고대 프랑스어는 13세기부터 문학작품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보급되었고, 필리프 2세 시대를 기점으로 다른 오일어에 대해 우위를 점하기 시작했다. 공문서 작성은 라틴어가 주를 이루었지만, 13세기 중반부터 고대 프랑스어가 점차 사용되기 시작했다.

 
 
 
 

2.2. 중세 프랑스어 시대

    (특히 14~15세기) 특징

 

 

1. 공문서에서의 프랑스어 사용 본격화

 

시작 시점: 필리프 4(1285-1314년 재위) 시대.

 

발루아 왕조의 영향 :

1328: 필리프 6(1328-1350년 재위) 왕위 계승.

정치적 정당성 회복을 위해 프랑스어 사용 강화.

필리프 6세 시대의 공문서에서 프랑스어가 라틴어에 우위.

2(1350-1364년 재위) 시대에도 프랑스어 강화.

프랑스어는 왕권 강화와 함께 공식 문어로 인정받음.

피카르디어 등 다른 오일어는 프랑스어의 상대가 되지 않음.

주요 라틴어 저서들이 프랑스어로 번역되고 대중 문학이 발달.

 

 

 

2. 오크어 지역의 프랑스어화

 

 15세기: 오크어 지역에서 프랑스어 사용 시작.

 오크어: 중세 문학의 황금시대를 주도, 투루바두르 문화권 대표.

 백년전쟁(1337-1453)으로 오크어와 문화 쇠퇴.

 15세기 중반부터 공문서에서 프랑스어 사용 시작.

 상류층, 식자층, 상인들 사이에서 프랑스어 사용 확산.

 프랑스어가 남부의 제2언어로 자리잡기 시작.

 

3. 부르주아지의 성장과 도시 언어로서의 프랑스어

 

 부르주아지의 성장: 도시에서 프랑스어가 주요 언어로 자리잡음.

 1550년경: 파리, 기독교 유럽 최대 도시로 성장.

 도시의 프랑스어화: 최초 프랑스어 공문서들이 부르주아들이 담당하는 도시에서 작성됨.

 북부와 남부의 차이: 남부 도시들의 프랑스어화는 서서히 진행됨.

 

4. 프랑스어의 우위와 시골말의 전락

 

 14세기 초: ‘프랑스어에 비해 조잡한 말’(patois) 출현.

 patois: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며 프랑스어를 제외한 모든 오일어와 오크어는 사투리로 간주.

 프랑스어는 왕국의 공식 언어로 자리잡으며, 오일어와 오크어는 사투리나 방언으로 전락.

 프랑스어는 왕권의 언어로 자리잡고, 다른 언어는 무관심과 방치의 대상이 됨.

 

5. 농민의 언어와 상류층의 언어적 우위

 

 농민: 자신의 마을 사투리만 사용.

 상류층, 식자층, 부르주아지: 프랑스어 사용에 따른 언어적 우위 강화.

 라틴어에서 프랑스어로 언어적 기반 이동.

 

2.3. 고전 프랑스어 시대

    (16~18세기) 특징

   

1. 프랑스어의 공용어로의 확립

 

 

- 빌레르코트레 왕령 (15398): 프랑스어를 왕국 전체의 공문서 언어로 명시.

- 세 가지 주요 점: 라틴어 배제: 프랑스어가 공용어로 확립됨.

                           오크어의 문어 기능 상실: 오크어 지역에서도 프랑스어가 공문서에서 사용됨.

                           프랑스어 우위: 오크어와 다른 지역어는 공문서에서 배제됨.

 

2. 추가 법규들

 

 

프랑스어는 16세기부터 유일무이한 공용어로 자리잡았으며, 1550년경에는 오크어도 공문서에서 거의 사라졌음.

빌레르코트레 왕령: 프랑스어 시대의 이정표, 이후 법규들은 프랑스어 사용을 의무화함.

 

 

3. 고전 프랑스어 시대 개요

프랑스어를 라틴어와 동등한 수준의 언어로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 전개.
식자층(작가, 학자들) 프랑스어 사용 운동 추진.
인쇄술의 확산으로 프랑스어 서적 증가, 라틴어 서적 감소.

 

 

4. 주요 사건 및 인물

 

 

5. 주요 사전 및 출판물

 

 

 

 

6. 프랑스어의 국제적 위치

 

17세기에 들어서면서 프랑스어는 유럽의 외교 언어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이러한 경향은 18세기 초에 더욱 확고해졌다.

 

1714년에 체결된 라슈타트 조약은 프랑스어의 위상을 크게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이 조약을 통해 프랑스어는 오랫동안 외교 언어로 사용되던 라틴어를 제치고 서유럽의 공식 외교 언어로 확립되었다.

 

이후 유럽 각국의 대사관에서 프랑스어 사용이 일반화되었으며, 국제 회의에서도 프랑스어의 사용이 필수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이는 프랑스의 정치적, 문화적 영향력이 확대됨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변화였다.

 

이러한 변화는 프랑스어가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을 넘어 국제 관계와 외교의 핵심 도구로 자리잡았음을 보여준다. 프랑스어의 외교 언어로서의 지위는 이후 오랫동안 지속되었으며, 이는 프랑스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7. 프랑스어의 우월성 논의

 

18세기 후반, 프랑스어의 우월성에 대한 인식이 유럽 전역에 퍼져 있었다. 프랑스어의 발음이 가장 자연스럽고 단일하다는 주장이 널리 받아들여졌으며, 프랑스어가 유럽의 국제어이자 외교 언어라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1782년 프로이센 왕립학술원은 흥미로운 논문 대회를 개최했다. 대회의 주제는 두 가지였다. 첫째, 프랑스어를 유럽의 세계어로 만든 요인이 무엇인지, 둘째, 프랑스어의 특권과 그 지속 가능성에 대한 것이었다.

 

이 대회에서 두 명의 참가자가 주목을 받았다. 리바롤은 프랑스어를 극찬하며 다른 언어들을 폄하하는 입장을 취했다. 반면 슈밥은 프랑스어의 보편성을 인정하면서도, 영어가 미래의 제국 언어가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이 사건은 당시 유럽에서 프랑스어의 위상과 영향력, 그리고 언어의 미래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다. 또한 언어의 우월성과 보편성에 대한 당대의 관심과 논쟁을 잘 반영하고 있다.

 

 

III.  혁명기의 언어정책

 

1. 언어정책의 배경

목표 : 프랑스어를 국민국가의 명실상부한 국어로 정립
의미 : '국어' 개념은 국민국가의 건설과 밀접한 관계
주요 방안 : 학교에서의 프랑스어 교육 강조, 방언과 사투리 근절
 

 

2. 주요 문서 및 법령

 

2.1.공문서 법령

        1.1: 모든 공문서는 프랑스어로 작성
        2.2: 모든 증서는 프랑스어로 작성해야 등기 가능
        3.3: 프랑스어 외 다른 언어로 작성된 문서를 사용한 공무원은 처벌
        4.4: 프랑스어 외 다른 언어로 된 문서를 등기하는 등록세 수납인도 처벌

 

2.2. 주요 발언 및 견해

 

     • 사투리 근절의 중요성 : 정치적, 종교적 중요성
 
     • 프랑스어 교육 : 시골 학교에서도 프랑스어로 교육 필요
 
     • 언어와 혁명 : 언어도 혁명적 변화 필요
 
     • 적대 언어 : 독일어, 이탈리아어, 바스크어 등은 반혁명적 의미
 
 

2.3. 자코뱅 언어정책

 

    • 평등주의적 민주주의: 언어 보편화와 의무화 시도
 
    • 언어적 자코뱅주의: 학교에서의 프랑스어 교육을 통한 실현
 
    • 법령 보류: 열월 반동 후 법령은 보류되었으나 교육 원칙은 유지
 

 

3. 학교에서의 프랑스어 교육

 

4. 병역 의무화

      • 1798년 시작: 프랑스어 보급에 크게 기여

 

5. 혁명기부터 일차대전까지의 언어정책 목표 :

 
      • 학교에서의 프랑스어 교육을 통한 프랑스어의 국어화
 
      • 방언과 사투리 근절

 

 

IV. 현대 프랑스의 언어정책

 

4.1. 배경

 

전환기: 2차대전 이후 프랑스어의 국제적 지위 급락, 영어의 급부상
 
1871년 프랑크푸르트 평화조약 프랑스어로 작성
 
1896년 쿠베르탱 남작의 올림픽 경기 부활로 프랑스어 위상 강화
 
 

4.2. 전환점

 

1919년 베르사유 조약: 프랑스어와 영어 병용, 영어가 외교언어로 공인됨
 

 

4.3. 대응 노력

 

1911: 프랑스어 보호 및 프랑스 정신 수호를 위한 국민협회 결성
 
1933: 프랑스어 전문용어위원회 결성, 언어 수호 활동
 
1937: 프랑스어협회 설립, 언어 규칙 제공 활동 (이차대전으로 무산)
 
 
4.4. 2차대전 이후 상황
 
영어의 득세 : 프랑스어의 국제적 위상 하락
 
1958-1973: 유럽공동체의 유일한 업무언어로 프랑스어 사용
 
현재 : 유럽연합에서 영어가 주도, 유엔 사무국 자료 90% 이상 영어 작성

 

 

4.5. 영어의 영향

영어제국주의 : 영어 단어의 범람, 세계화와 인터넷의 영향으로 영어가 국제어로 군림
 

4.6. 현대 언어정책

최우선 과제 : 영어의 위협으로부터 프랑스어 수호
                         프랑스어의 국제적 위상 높이기
 
4.7.  요약

 

프랑스의 언어정책 변화

        : 2차대전 이후 프랑스어 보호와 국제적 위상 회복을 목표로 수정됨

 
주요 시점

        : 1919년 베르사유 조약, 1958-1973년 유럽공동체 업무언어 시기,

          유럽연합과 유엔에서 영어의 지배적 사용

 
대응 활동

       : 프랑스어 보호 단체 설립, 전문용어위원회 결성, 언어 규칙 제공을 위한 노력

 

 

참고문헌 

        송기형, 현대프랑스의 언어정책, 한국문화사, 2015, pp.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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